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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소)SBS PD 공채 필기시험 후기 feat.MBC나 KBS나 비슷할듯?..

by 아리사짱 2020.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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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서류 전형

매번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기대 안 했다. 스펙도 변변치 않을뿐더러 거의 4000명 정도 지원한 것 같았으니깐. 근데 한 가지 확실했던 건 자소서를 쓰며 진짜 내 얘기를 썼다는 생각은 들었었다. 자소서 문항은 2000자 짜리 세 문항이었다. 총 6000자. 역시 악명 높기로 유명한 SBS 공채답다. 문항은 다음과 같다. (혹시 1년 전 나와 같은 상황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1. 입사 지원 동기를 작성해주세요. (① 선택한 직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②해당 직무를 잘 수행하기 위한 본인의 경쟁력을 포함하여 작성)

정말 있는 그대로 썼다. 생애 처음으로 인생의 목표를 고민하던 중 군대에서 TV 보다가 PD의 꿈을 갖게 된 것, 예전에 인턴했던 회사의 대표가 폭행 치사로 긴급 구속된 모습을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목격하며 희열감을 느꼈던 이야기 등.. 아마 후자가 먹혔던 것 같다.

2.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소위 말하는 ‘스펙’ (학점, 어학점수, 대외활동, 자격증, 교환학생 등)을 제외하고, 회사가 자신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자유롭게 작성해주세요. (본인의 장/단점 등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든 좋습니다.) 2000자

뻔할 수 있지만.. 정말 이것도 있는 그대로 썼다. 내가 어떻게 처음 영상 제작을 시작했고, 어떤 도전들을 했으며, 어떤 성과를 얻어냈는지. 여기서 말하는 도전은 공모전을 준비했던 걸 말한다. 계속 떨어지던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었던 게 유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3. 최근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이며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서술하고, 그 분야와 관련된 내용을 프로그램으로 소개한다고 가정하여 기획안을 작성해주세요. (시사 이슈, 사회 현상, 새로운 산업, 취미 활동 등 관심 분야의 범위는 제한 없음) 2000자

공모전에 입상했던 영상 소재(못난이 농산물)을 가져와 기획안을 작성했다. 장르는 단편 다큐멘터리였는데 내가 봐도 번뜩이는 기획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대한 세심히 작성하려고 했다. 기획의도와 내용은 물론 내레이션을 담당할 출연자까지 고심하여 작성했다.


"스카이라 뽑았다." vs "뽑아보니 스카이."

이 논란은 방송사 공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방송사 공채에서는 학벌 등 스펙 커트라인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광탈했던 이유를 거기서 찾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스펙도 변변찮은 내가 약 4000개의 자소서 중에 커트 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진짜 내 이야기가 담긴 자소서여서 이지 않았을까 싶다(다시 말하면 '그들은 자소서를 정말 읽는구나.'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2차 필기 전형

2차 시험은 동국대에서 치러졌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인데다 오전 8시 40분까지 입실이라서 6시부터 일어나 준비했다. 서류 전형 합격 발표 후 약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는데 준비라고는 늘 그래왔듯 아침 신문 읽기, 벼락치기 상식 암기, SBS 스페셜 모니터링하기 밖에 없다. 사실 이 중에서도 SBS 스페셜 모니터만 열심히 한 것 같다. 신문 읽기와 상식 공부는 여전히 재미가 없다.

동대 입구역에서 내리고 나서 엄청난 인파에 한 번 놀라고, 고사실에 도착하니 세차게 퍼붓기 시작한 장대비를 보며 두 번 놀랐다. 뽑아봤자 분야별로 한두 명 뽑을 공채에 지원자 수가 만만치 않다는 현실을 보고 하늘도 놀란 게 아닐까 싶었다(이런 거 보면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1교시 - 상식 시험 (50분)

역시 SBS다웠다는 말밖에. 정치, 사회, 스포츠, 예술 등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문제는 역시 "명징하게 직조하다."이다. 이 문장에 대해 아는 대로 세 줄 약술하는 문제였는데 도저히 그 뜻이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검색해보니 영화 평론으로 유명한 이동진 평론가가 기생충을 보고 쓴 한 줄 평이라고 한다. 이는 곧 '명징사태'라고 불리며 '허세다 vs 표현의 자유다'라는 의견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고 한다(나는 몰랐다). 상식 책만 죽어라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관심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시험이었다.

2교시 - 작문 시험 (80분)

다음은 SBS 교양 프로그램에 나온 일반인 출연자들이다. 이들 중 두 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이들이 현재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시오. 단, 맨 첫 문장은 의문문이어야 함.

1. <그것이 알고 싶다> 세상을 바꾼 공익제보자

2. <궁금한 이야기 y> 7년째 집 대신 차에서 방랑하는 여성

3. <짝> 사랑을 찾지 못하고 우정만 찾은 국민 형 남자 4호

4. <세상에 이런 일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맹인 아빠

5. <백 투 마이페이스> 성형 복구 수술을 위해 나온 성형중독자

6. <인터뷰 게임> 성전환수술 후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남편

7. <영재발굴단> 따돌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IQ 164 수학천재

-출처 : 아랑 카페 필기 복원 방

젠장. 전부 처음 본 에피소드였다. 경험상 필기시험장에서는 작문 시험지를 돌리는 순간 볼펜을 굴려대는 소리가 정신없이 들리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정적이 흘렀다(적어도 우리 고사장은). 내 머리는 체념하라는 신호를 주었고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라도 끄적여야 했다. 7가지의 에피소드 주인공 중 공통점을 가진 사람 찾기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3번의 남자 4호와 6번의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남자다. 그런데 남편은 성전환 수술 후 아내에게 돌아가고 싶단다. 그럼 남자가 좋았다는 뜻인데.. 그렇게 나는 이 둘의 로맨스를 쓰기로 했다. 최근 가장 많이 보는 미국 시트콤 모던패밀리의 캠과 미첼 커플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역시나 후기가 여기까지인 이유는 필기 문턱을 넘지 못해서지. 하지만 얻은 점도 많이 있다. 이전까지는 아예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면 지금은 저 멀리 조그마한 점 같은 빛이 보이는 느낌이랄까. 묵묵하게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가다 보면 그 조그마한 점이 어느새 눈도 못 뜰 만큼 밝아져 내 코앞에 다가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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